2006년도 제45회 시즈오카 하비쇼

2006. 5. 19 (금) ~ 5. 22 (월) 까지 3박 4일의 일정으로 주말에 열린 일본 시즈오카 하비쇼에 갔다왔다.

업체의 신제품 발표회와 전일본 모형클럽 합동전시회는 물론이고 벼룩시장(‘Flea Market’의 일본식 영어인 ‘프리마’라고 한다)까지 열려서 인파에 휩쓸려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취업박람회 정도나 이만한 인원을 동원할 수 있으려나…

사실 전시회와 벼룩시장 같은 거야, 다른 나라의 모형전시회들과 다를 바 없어 별로 낯선 구성은 아니었고 모형클럽의 제작 수준 역시 쫄았던 것처럼 모두 하드코어 수준이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린아이부터 꼬부랑 할아버지까지 남녀노소 구분없이 즐겁게 모형을 즐기는 모습은 역시 ‘저변이 넓다’라는 느낌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국에서는 나를 포함하여 15명의 인원이 참가하였다. 옛 3개 PC통신 모형동호회의 연합체인 ‘모형삼합회’와 대전의 ‘모델링 제너레이션’, 그리고 송파, 분당권 클럽인 ‘하비캠프’ 등이 참가하였고 전차 모델러인 안준홍씨와 내가 개인자격으로 함께 했다.

개인자격으로 참가한 나는 오동나무 상자까지 주문해서 가져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가져간 3대의 비행기가 별로 인기를 못 끌어 좀 섭섭했다. (진짜?) 사진 왼쪽의 회색 EA-7L과 오른쪽의 도마뱀 위장 / 사막위장 Kfir 등 3대가 나의 출품작이다.

그러나 한국 연합팀 부스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작품은 바로 모형지 ‘취미가’의 발행인이자 편집장이었던 이대영 선생님의 최신작, ‘Bloody Colonials!’ 였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앞두고 남부 영국에 연합군이 득실댈 때의 모습을 재현한 디오라마로서, 작년도 유로 밀리테어 대상 수상작이다. 제목인 ‘Bloody Colonials!’는, 캐나다군의 전차에 무너진 자기집 돌담장을 보고 ‘이런 육시랄 식민지 x들!!!’ 하고 소리를 지르는 괄괄한 영국 할머니의 외침인 거다.

지금은 캐나다로 이민을 가셔서 ‘이대영’이라는 이름보다는 세계 모형계에 ‘Douglas Lee’로 더 잘 알려지신 분이지만, 중고등학교 때 열심히 읽던 ‘취미가’의 편집장으로서, 이 ‘조립식 장난감 좋아하는 철없는 중생’에게 전혀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선구자로서, 꼭 한번 만나뵙고 싶었던 분이다.

솔직히, 뜬금없이 이번 시즈오카 하비쇼에 가게 된 데에는 이번 행사에 이대영 선생님도 본인의 작품을 갖고 오신다는 걸 알게 된 이유가 가장 컸다.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려 사진을 거의 못 찍었지만 그 와중에 내 시선을 끈 몇몇 사진을 올려보기로 한다.

이것은 우리 부스 근처에 자리를 잡았던 ‘이세 플라잉 비너스'(ISE FLYING VENUS) 팀의 출품작이다. 이스라엘 공군기인 Kfir를 출품한 사람은 나 혼자인 줄 알았는데 이 클럽 부스에서 같은 Kfir C2의 회색 위장기를 보고 반가왔다. 제작자인 Mr. Hiroshi Kuski (宏 楠木) 씨는 꽤 영어를 잘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엘레르 1:48 키트를 이용했지만, 개조키트를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의 개조포인트를 자작했다고 한다. 콕피트와 피토관 등의 디테일은 가히 압권이었다. 클럽 내에 이스라엘 항공박물관에 갔다온 회원이 있어 Kfir의 디테일업 사진을 많이 볼 수 있었다고.

이것은 우리나라 모형계에도 꽤 알려진 함상기 전문 동호회 Tailhook 클럽의 Mr. Hideharu Simizu (淸水 秀春) 씨 작품이다. 일본의 모형지 필진이기도 한 이 실력있는 모델러는, 아쉽게도 영어를 거의 못해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으나 위 작품 하나만으로도 그의 실력과 열정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하세가와 1:48 A-7E 코르세어 II 기체를 대대적으로 디테일업한 역작이다. 콕피트 뒤에서 공기흡입구쪽 기관포까지 이어지는 절개부는 완전 자작이란다.

사진 가장 왼쪽은 이번 여행 내내 단짝처럼 즐겁게 지냈던 안준홍씨. 대구의 AFV(전차, 장갑차 등) 전문 모델러로서 올해 9월 영국에서 열리는 유로 밀리테어 대회를 앞두고 역작을 다듬고 계시단다. 이번 하비쇼에 들고간 4개의 작품들 또한 일본 유수의 모형지에 게재되기로 했단다.

중간의 인상 좋게 생기신 분은 역시 한국 모형계의 유명인사, Mr. Mori Hiroyuki (森 弘之)씨다. 시즈오카의 비행기 전문 모형클럽 ‘콕피트회(會)’의 대표이신데 예전 취미가 초창기의 시즈오카 하비쇼 리포트를 통해 많이 알려졌고 독학으로 익히신 한국어가 수준급이신 ‘지한파’이시다.

이번 하비쇼에도 우리 부스에 자주 오셔서 많은 얘기를 나누고 가셨다. 정말 좋으신 분이다!

이번 시즈오카 원정을 주도(?)하신 모형삼합회 회원 중 몇 분과 함께. 중간에 카메라를 들고 계신 분은 자동차 모형 전문 김광태씨이시고, 오른쪽의 흰 옷을 입으신 분은 비행기 모형 전문 정기영씨이시다. 정기영씨와는 나이도 같고 취향도 비슷해서(…응?) 꾸준히 교류하고 있는 편이다. (언제 냉면 좀 사쥬셈…)

그리고 last, but not least… 이번 시즈오카 하비쇼 참가를 마음먹게 한 이유이자 목표인 이대영 선생님과 함께.

워낙 고집이 강하셔서 모형계 안에서도 이런저런 평가가 있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정말 ‘아무 것도 없었던’ 이 땅에서 혼자 잡지를 만들고 한국 모형계의 기틀을 세우는 등 ‘無에서 有를 창조해냈던’ 일은 누구도 쉽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

예전에 취미가에서 이대영 당시 편집장님이 이런 얘기를 쓰신 적이 있다.

하여간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 구독하기 시작한 것이 ‘학생과학’이다. (…) 그 당시의 학생과학은 발행회사, 필진, 주요내용 등이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고, 요즘처럼 일반 흥미위주의 소년 교양잡지가 아니라 ‘줏대있는’ 전문지였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 당시에 구독해보았던 이 책만한 양서가 그 이후로 또 나온 적이 있을까 싶을만큼 내용이 좋았는데, 여기서 얻은 지식과 느낌은 20년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생생하여 필자가 ‘취미가’를 처음 창간할 때까지도 ‘제2의 학생과학’을 내손으로 만들어보자는 결의 같은 게 있을 정도였다.

하여간 최근에 이 잡지에 관련했던 어떤 분으로부터 당시의 이 책은 발행인으로부터 편집진에 이르기까지 전직원이 20대 중~후반의 젊은이들로, 회사의 분위기가 개척자적 사명감 같은 걸로 충만했었다는 얘길 들을 수 있었는데, 아닌게 아니라 그 당시 이 책의 내용을 보면 그런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

이대영 선생님에게 ‘학생과학’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좌우했던 잡지였다면, 내게는 이대영 선생님 자신이 만들었던 ‘취미가’가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문체상의 특징이나 가치관 같은 것들도 사실은 대부분 ‘취미가’에 실린 이대영 선생님의 ‘호비스트 칼럼’에서 온 것들이니까.

아무튼 당사자는 나를 알 턱이 없지만, 나는 당연히 내 청춘의 mentor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저렇게 사진을 찍고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으니 (심지어 토요일 저녁 일본 모델러들과의 회식 때도 나는 이대영 선생님 앞에 앉았다!!! ㅎㅎ) 나로서는 더할나위 없는 영광의 5월이었던 것이다.

시즈오카 하비쇼 자체도 충분히 즐길만한 것이었지만, 내 개인적으로도 많은 즐거움과 기쁨으로 가득할 수 있어 좋은 여행이었다.

5 comments

  1. 현중님은 살이 쏙 빠진 분위기인데…..식도락 포스팅을 자주 올리시는 G님은 살이 더 찌신 듯 합니다. 두분 다 건강한 모습으로 잘 다녀 오셔서 다행입니다. 어서 가방을 열고 사오신 킷을 보여 주세요 ^^

    1. 제 체중감량의 8할은 모두 창원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요리를 못해 저녁을 굶고 다녔더니 살이 쏘옥… 기영님은 사진과 달리 보기 좋을 정도의 듬직한 덩치를 갖고 계신데, 저 사진에서만 이상하게 나와 좀 죄송하네요. (^^) 키트보다는 하세가와 부스에서 벌크키트(다 흔한 거에요~~~)를 몇 개 주워왔는데, 조만간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2. 이상하게 T셔츠를 입으면 뿔어보이는군요. 저 정도는 아닙니다. 몸무게는 현재 1년동안 큰 변화없음~ ㅋ (진짜?)

  3. 현중씨 정말 오랜만입니다. ^^
    잘 지내고 계시지요?
    귀국하던날 검색대를 통과하니 현중씨도 그렇구 많은 분들이 먼저 가셨더라구요.
    남은 저희는 안 나온신줄 알고 한참 기다렸더라는 ^^
    하여간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이곳도 어렵게 들어왔네요.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또 조만간 뵙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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