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작업실 소개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온지도 벌써 6년이 되었다. 이 집에 들어올 때 베란다 작업실을 만들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6년이 지났다니 쉬 믿겨지지가 않는다. 신혼집의 첫 작업실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10년새 3번째 작업실인 셈이다.

그 사이 베란다 작업실에서 만든 비행기도 많았는데, 한반도의 이상기후(?)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제는 베란다에 나가서 뭘 꼼지락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더라. “4계절이 아름다운 우리나라…”하고 배우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어디 갔는지, 1년 내내 아주 덥거나 아주 추운 기후가 되어버린데다가, 나 역시도 뭘 좀 해보겠다고 베란다에 나갈 결심을 하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헬스클럽에 등록한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매일 헬스클럽에 가는 것 그 자체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색칠 단계를 전후하여 작업실을 2개로 분리하기로. 베란다 작업실은 순전히 색칠용 작업실로만 쓰고, 조립과 데칼링, 웨더링을 위한 거실 작업실을 따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내 비행기 만들기 취미를 이해해주는 집사람이 별 반대 없이 응해주어 F-16I를 완성한 직후인 지난 2017.12월~2018.1월 겨울 시즌에 조금씩 짬을 내어 거실 작업실을 꾸며보았다.

거실 작업실은 거실쪽 베란다를 확장한 공간이다. 원래 이 자리는 아이들용 미끄럼틀과 트램폴린이 있던 곳인데, 애들이 커서 그것들을 치워버리면서 공간을 낼 수 있었다.

작은 공간이지만, 그래도 거실은 거실이므로 작업대의 규모는 최소화 하고 싶었다. 입식이 아닌 좌식으로 꾸민 것도 그 때문이다. 이제는 잘 안 써서 거실 소파 밑에 쳐박이두었던 앉은뱅이 책상(밥상?)을 이용했다.

공구 등을 걸기 위한 철망도 앉은키에 맞춰 소형(90cm x 90cm)으로 새로 샀다. 철망은 인터넷이나 오프라인에서 철망, 펜스, 휀스 등으로 검색하면 쉽게 구할 수 있다.

다만, 철망 다리는 기성품이 주로 ㅗ자형이다. 나는 창가쪽으로 철망을 바싹 붙일 거라서 ㄴ자 모양의 다리가 필요했다. 내가 찾아본 바로는 ㄴ자 모양의 철망 다리를 파는 곳은 아래의 업체가 유일했다.

전기콘센트가 왼쪽 벽 먼 곳에 있기 때문에 1.5m 멀티탭을 하나 샀다. 스탠드, 전동공구, 휴대폰 충전 등 전기를 쓰는 모든 작업을 책임지는 이 작업실의 ‘Power Plant’인 셈이다.

요즘에는 철망걸이도 다양하게 나오더라. 후크, 선반, 바구니 등 용도에 맞게 적절한 제품을 구해 이용하면 된다.

작업대는 사실 원목가구 느낌의 “나무책상”이다. 따라서 칼질 같은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커팅매트가 필수다. 예전부터 쓰던 저렴한 국산 A2 매트가 있긴 했지만, 새 작업실을 꾸미는 김에 커팅매트도 신제품으로 하나 쓰고 싶어서 타미야 A3 커팅매트도 하나 더 구입했다. 타미야 커팅매트의 장점이라면, 무광택이어서 빛 반사가 덜하다는 점, 표면에 그려진 도형들이 꽤나 다양하다는 점, 그리고 타미야 브랜드가 주는 우쭐함(?), 뭐 그 정도…? ^^

작업실 소개하면서 내가 자주 쓰는 도구들도 간간히 소개하려 한다. 이것은 1회용 콘택트렌즈 트레이다. 페인트, 퍼티, 순간접착제 등을 부어놓고 쓰는 간단한 팔레트로 사용하면 딱 좋다. 집사람이 콘택트렌즈를 종종 끼는데, 그때마다 팔레트가 하나씩(눈이 2개니까 2개씩…) 생기는 셈이다. 콘택트렌즈는 1회용이지만, 이 트레이는 시너 등으로 잘 닦아주기만 하면 몇번이고 재활용할 수 있다.

F-16I를 만들면서 큰 덕을 봤던 Mig의 Oilbrusher, 그리고 웨더링용으로 자주 쓰는 파스텔을 보관하기 위한 작은 수납통을 만들어서 쓰고 있다. GSI크레오스의 웨더링 파스텔 상자(마분지)를 이용하여 만들었다. 좀더 예쁘고 실용적으로 만들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 거실 작업실을 만들며 파스텔 보관통이 필요해서, 안 쓰는 종이상자를 이용해 부랴부랴 칼과 자로 쓱쓱 30분만에 만들어낸 것치고는 큰 불편함 없이 쓰고 있다.

이건 사포 보관함. 베란다 작업실을 처음 꾸밀 때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집에 굴러다니던 정체 모를 플라스틱 통을 이용했다. 명함보관함이었을 것 같은데, 하도 오래전부터 굴러다니던 거여서 어쩌면 3.5인치 플로피디스크(요즘 애들은 이거 모르지??) 보관함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즐겨쓰는 곤충핀 신공(?)의 작업편의성을 높이고자 핀별로 핀바이스를 갖춰놓고 있다. 척(chuck)이 큰 국산 핀바이스도 써봤지만, 결국에는 섬세하고 가벼운 타미야의 Fine Pin Vise S로 정리했다. 곤충핀과 그에 대응하는 드릴의 라벨 색깔을 통일시켜서 눈에 쉽게 띄게 한 것도 나름의 노하우다. 0.2mm 드릴날은 일반 중국제(일반용)와 함께, 샹크(shank)가 굵은 타미야제(리베팅용)를 함께 쓰고 있다.

곤충핀, 드릴날과 드릴을 담은 나무 트레이는 모두 동네 다이소에서 구입한 것들.

에폭시 퍼티처럼 잘 안 쓰는 물건들은 가장 위에 올려놓았다. 철망 위로 무거운 물건들을 올릴수록 철망의 균형이 불안해지므로 조심해야 한다.

아래쪽에는 손만 뻗으면 집을 수 있도록 자주 쓰는 물건들을 배치했다.

오른쪽 살짝 위로는 핀셋, 니퍼 등 공구류.

핀셋걸이는 플라스틱판으로 만든 자작품이다. 서로 다른 용도의 핀셋들을 대여섯개 쓰고 있는데, 갯수도 많고, 트레이에 눕혀 보관해보니 자리만 많이 차지해서 아예 철망에 걸어 보관하는 편이 낫겠다 싶어 핀셋걸이를 만들어 쓰고 있다.

입이 넓은(= 넓게 벌어지는) 핀셋을 거는 부분은 파이프 지름을 키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핀셋이 밑으로 쑥- 내려가버린다.

2017년 가을쯤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손으로 쓱쓱 설계도를 그리고 플라스틱판과 플라스틱 파이프를 재단해서 급조한 것치고는 나름 쓸모있게 잘 사용하고 있다. 이걸 만든 뒤에 구입한, 좀더 정밀한 역핀셋을 걸 수 있는 업그레이드 버전을 언젠가 만들 생각이다.

페인트도 모두 거실로 들여왔다. 덥고 추운 베란다에 그대로 두면 아무래도 물성에 안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아서…

우선,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GSI크레오스 래커는 기성품 플라스틱 수납함(코드번호 CA 503; 크기 260mm x 235mm x 72mm)에 넣어두었다.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으며, 총 7개를 썼다. (마지막 7번째 칸은 여분)

타미야, 모델마스터 에나멜 페인트와 온갖 플라스틱, 금속 재료는 마땅한 것이 없어 가구를 주문제작했다.

플라스틱/금속재료 보관함(위), 에나멜 페인트 트레이(아래)의 설계도다. 개인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SketchUp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이 설계도를 주문제작 가구업체에 보내면 되는데, 내가 접촉한 업체를 포함하여 많은 수의 가구 주문제작 업체들이 SketchUp을 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SketchUp 파일을 그대로 보내기보다는 특징적인 샷 몇 장을 JPG 파일로 만들어 업체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보내야 한다.

하단 보관함에는 내가 가진 다양한 각재, 판재들의 특성에 따라 4개의 공간을 두었다.

뒷면이 좀 특이하게 생겼다. 가장 긴 플라스틱 봉, 각재들을 넣는 공간이 뒤로 삐쳐나오도록 만든 것인데… 이런 모양으로 만든데는 다 이유가 있다.

철망에 붙는 ㄴ자 다리와 작업책상 사이의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ㄴ자 다리가 삐쭉 삐쳐나와 있어서, 보관함의 뒷면을 평평하게 만들면 ㄴ자 다리가 삐쳐나온 만큼 보관함도 앞으로 툭- 튀어나오게 된다. 그만큼 가구배치가 이상해지고 공간을 비효율적으로 쓰게 된다.

사실 지금의 저 보관함은 두번째 작업물이다. 뒷면을 평평하게 만들었던 첫 작업물이 아무래도 마음에 안 들어 폐기하고 재설계하여 다시 제작의뢰한 것이 지금의 저 보관함이다. 모양도 이상하고, 돈도 2배로 들었지만, 내 거실작업실 구조에 딱 들어맞는 커스텀 모델이어서 지금은 대만족이다.

트레이는 약간 경사지게 만들었다. 에나멜 페인트 뿐만 아니라 점안식 아크릴 페인트 등 마이너한 페인트들도 다 여기에 올려둔다.

작은 사각(dead space)도 허용하지 않고 딱 들어맞게 설계했다. 만족한다.

쓰레기통은 별도로 없다. 비닐봉지에 테이프를 붙여 작업대 바로 앞에 붙여두었다. 분리수거를 위해 왼쪽은 플라스틱 부품, 오른쪽은 일반쓰레기 용도로 구분했다.

오른쪽에는 페인트나 시너 닦은 휴지, 사포가루 등 온갖 잡스러운(?) 것들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냄새나 분진을 어떻게 처리해야하나 좀 고민했다. 그때 갑자기 생각난 아이디어. 비닐봉지를 몇번 돌린 뒤 빵봉지 철사로 한두번 묶어주면 괜찮다. 작업을 재개할 때는 다시 열어서 쓰면 된다.

자료집과 일부 모형용품을 쓸 수 있도록 작업대 옆에 있는 책꽂이 윗단 2개를 허락 받았다. 원래 서재로 쓰던 방에 있던 것들인데, 그 방을 큰 딸 방으로 만들면서 갈 곳을 잃어 거실 작업실로 쫓겨나온(?) 것이다.

(책꽂이 위에는 아이들이 만든 종이공작 동물들이 한 가득이다. 만드는 거 좋아하는 피를 물려받아서인지 딸, 아들 모두 종이공작 동물들을 너무 좋아한다. 거의 동물농장 수준…)

데칼보관함과 포토에치, 캐노피마스크 보관함도 이쪽으로 옮겼다.

기존의 베란다 작업실은 창고가 되다시피 했다. (…) 색칠용 작업실이라는 목적대로 에어브러시 색칠 외에는 이곳에 더 머무르기가 어렵다!

작업대와 철망에는 색칠에 필요한 일부 용품들만 남겨두었다.

작은 부품들을 집기 위한 악어클립도 갯수가 많다보니 철망에 걸어두었다. 500ml PET 생수 병 중간 부분을 잘라 클립걸이를 만들었는데, 큰 무리 없이 잘 쓰고 있다. 많은 수의 악어클립을 그냥 필통에 꽂아두면 위로 올라갈수록 차지하는 면적이 넓어지기 때문에 깔끔하게 보관하기가 의외로 어렵다.

키트의 플라스틱 스프루(줄기)를 잘라 모아두면 색칠 전 페인트 휘젓는 막대기로 쓸 수 있다. 아이들이 먹는 요구르트 병을 잘라 간이보관함을 만들어서 보관하고 있다.

6년전 자작했던 스프레이 부스는 아직도 잘 돌아가고 있다. 예전에는 필터를 테이프로 붙여 고정했지만, 지금은 네오디뮴 자석을 써서 고정하는 식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이 차이점이라고 할까?

베란다 작업실 구석에 있던 낡은 책꽂이도, 큰 딸 방을 만들어주면서 남는 책꽂이로 좀더 업그레이드 해보았다. 각종 별매품과 부자재들을 여기 올려 보관하는데, 페인트 같은 많은 것들이 거실 작업실로 옮겨가서인지 자리가 많이 남는다.

베란다 작업실과 연결된 방을 큰 딸의 방으로 만들어주면서, 그 방에 있던 많은 키트들을 다른 방으로 옮겼다. 아직은 어리지만, 둘째 아들이 더 크면 이 방도 아들의 방이 될 테다.

10년전 신혼집에서 방 하나를 작업실로 쓰다가, 6년전 이 집으로 이사 와서 베란다로, 다시 거실 한켠으로…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아빠의 물리적 자리는 이렇게 점점 작아지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우리 네 명이 지금처럼 행복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으면 충분하다. 플라스틱 쪼가리를 갖고 꼼지락거릴 수 있는 여유가 가끔씩 허락되면 아빠에게는 더할 나위 없을테고.

2 comments

  1. ^^ 깔끔하게 정리된 작업공간이군요.
    마님께서 너그러우신듯… 거실에서 도색하시면 냄새난다고 타박이 심할 텐데.. ㅡ..ㅡ;
    부러워요. ^^
    개굴~

    1. 다른 분들에 비해 집사람이 많이 이해해주는 건 맞는 것 같습니다. ^^ 그래도 색칠은 베란다에 나가서 하고 있어요.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고 그렇습니다. ㅠㅠ 작은 부품 붓질 같은 것은 눈치보면서 거실에서 살짝살짝 할 때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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