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체력이 떨어진 건지, 감정적으로 지친 건지, 도통 매사에 흥미가 없었다. 회사일의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일텐데, 예전 같으면 작업대에 앉아 모형작업을 하면서 평정심도 되찾고 다시 일어설 기운도 북돋우고 그랬겠지만, 이번 팬톰은 아주 귀찮은 단계 앞에서 멈춰서인지 도통 작업대에 앉을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아주 귀찮은 단계”란, 동체 옆면의 패널라인 되파기(rescribing)다. 별매품을 사용한 Seamless Intake와 키트 부품의 결합이 좋지 않아 플라스틱 판과 각종 퍼티로 아주 대공사를 했는데, 이 부분이 썩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이로 인해 지워진 패널라인을 되새기는 작업에 좀체 손이 안 간 것도 당연하고…
회사일로 너덜너덜해진 심신을 추스르고자, 금요일에 연차를 냈다. 금, 토, 일 3일 연휴가 생겼음에도 일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작업대에 앉을 의욕이 생겼다. 근 한달만의 작업인 셈이다.
Seamless Intake 결합작업을 마무리 하고 패널라인을 되파는데는 GSI크레오스의 Mr. Surfacer 1000와 Mr. 녹인 퍼티, 타미야의 광경화퍼티 등 다양한 재료를 썼다.
특히, 타미야의 광경화퍼티는 몇년전에 새로 출시됐을 때 조금 써보다가 나랑 안 맞는구나 싶어 처분해버린 경험이 있는데, 최근 Facebook 김경한님의 코멘트를 보고 다시 구입해서 써봤다. 경화속도도 빠르고 수축도 없고 강도도 괜찮아서 아주 만족했다. (자외선라이트를 비춰 사용하면 경화도 빠르고 좋다고 하셔서 자외선라이트를 구입했는데, 내가 쓰는 LED스탠드에 비춰도 충분한 것 같다)
Seamless Intake 결합작업이 끝나고 패널라인 되파기가 어느 정도 진행된 동체 왼쪽(Port)의 모습. 광경화퍼티 덕택에 아주 깔끔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광경화퍼티가 아니었다면, 패널라인을 되팔 때 래커퍼티나 에폭시 퍼티가 퍽퍽 떨어져나가면서 작업효율을 매우 떨어뜨렸을 것이다.
작업 중간중간마다 Mr. Surfacer 1000을 붓질하면서 표면상태를 확인했다.
동체 상면의 길쭉한 패널라인은 모덱스 테이프를 길게 잘라 붙인 뒤 가이드로 삼았다.
다른 하세가와 1/72 팬톰 키트의 동체 부품을 뜯어내어 본으로 삼고 패널라인을 팠는데… 깨끗한 상태의 다른 키트 부품을 보고 있자니, ‘지금 만드는 거 이 상태에서 그냥 버리고 새 키트를 잡아서 새로 만드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몇 번 들었다. 꾹 참고 도(道)를 닦듯 우직하게 패널라이너를 놀리긴 했지만, 유혹을 참느라 힘들었다. (아마도 다음에는 키트 그대로 스트레이트 빌딩 할 것 같다)
어쨌거나 가장 문제가 되는 동체의 큰 선(線)들은 다 팠다. 큰 고비를 넘긴 느낌이다. 기수와 하면, 리베팅 등도 차근차근 이어나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