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플라스틱 숟가락을 이용해 칼라칩을 만든 적이 있다. Macchi C.202을 만들면서, 기존과는 전혀 다른 2차대전 이탈리아공군의 색 지정에 당황하여 시작했던 것인데… 갖고 있는 GSI 래커 중에서 적당한 색을 고르는데 아주 큰 도움을 받았다.
사실 이번 MiG-23MLD 제작시에도 무슨 색을 써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갖고 있는 래커 중에서 적당한 색이 있는지 여부조차 확실치 않았다. 오히려 작년 여름부터 GSI 크레오스에서 새로 출시하고 있는 래커 중에서 쓸만한 게 있는 것 같은데, 무슨 영문인지 한국에는 여전히 수입이 안되고 있고…
그러던 중, GSI래커 신제품 C511부터 C530까지를 팔고 있는 한국 사이트를 발견했다. C511~C530 라인업은 Mr. Color 신제품 중에서 2018년 7월에 1차로 발매된 탱크 특색들로서, 2차로 2018년 12월에 발매된 비행기/함선 특색 신제품(C35x~C39x, C60x)은 아직 그 사이트에도 입하되지 않아 아쉬웠지만, 탱크 특색들 중에 써볼만한 색들이 있는 것 같아 앞뒤 가리지 않고 C511부터 C530까지 20개를 모두 일괄구매해버렸다. (사실 C511~C530은 기존 GSI 래커 세트로 발매된 것들을 단품으로 재발매한 것이므로, 시중에서 그에 대응되는 래커 세트를 구입해도 무방하다)
- GSI래커 특색 신제품 구입처 : 애니페인즈 http://shop.anipains.co.kr/
특색을 구입한 김에 MiG-23MLD에 쓸 색을 찾기 위해 다시한번 칼라칩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지금에서야 편하게 말하는 것이지, 사실 처음에는 큰 결심이 필요했다. 특색 20개 뿐만 아니라 내가 가진 래커 페인트 중 MiG-23MLD 위장에 쓰이는 녹색계열, 갈색계열, 회색계열을 모두 칼라칩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으니까.
기존에는 플라스틱 숟가락을 칼라칩으로 썼지만, 만들어야할 칼라칩의 갯수가 이렇게 많아진다면 차라리 납작한 형태가 낫다. 페인트의 색감을 비교하기도 편하고, 보관시 차지하는 부피도 줄일 수 있으니까. 고민 끝에 낙점된 것은 옥션, G마켓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플라스틱 칼이다. 플라스틱 모형과 같은 PS(폴리스티렌) 수지인데다 하얀색인 것도 칼라칩으로서 장점이다. 100개 단위로 판매하며, 1묶음에 3~4천원선이므로 가격도 싸다.
많이 만들어야 하므로, 더이상 손과 네임펜으로 페인트 번호를 적어가며 칼라칩을 만들 수는 없다. 워드프로세서나 MS Excel 등을 써서 통일된 모양으로 라벨을 만들고, 폼텍 같은 용지에 출력해둔다.
플라스틱 칼의 손잡이에는 작은 요철이 있다. 라벨을 붙일 때 손톱이나 손가락 끝을 써서 최대한 밀착되게 붙여줘야 한다.
칼라칩을 만들 때, 페인트 농도는 약간 되직한 것이 낫다. 그래야 래커 속 안료가 두텁게 붙는다. 그리고 칼라칩은 어차피 뿌릴 면적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페인트를 에어브러시에 많이 넣을 필요는 없다. (모형 칠할 때처럼 페인트를 많이 넣으면 나중에 에어브러시 세척만 힘들어진다)
실제로 만들어본 칼라칩. (처음에는) 시간 절약을 위해 플라스틱 칼날의 절반에만 색을 칠했다. 이렇게 칼라칩을 만들어놓으면, 같은 FS 36375를 재현한 페인트라도 각 제조사마다 색감이 어떻게 다른지를 언제든지 쉽게 비교할 수 있다.
2019년 11월 24일 일요일 하루를 모두 투자하여 완성한 72개의 칼라칩. 라벨 붙이기, 페인트 희석, 색칠, 에어브러시 세척 등 칼라칩 1개를 만드는 데 4-5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72개를 만들었으므로 순수한 작업시간만 6시간이 걸린 셈이다. (아침 9:30부터 저녁 7:30까지 작업했으니, 중간중간 식사와 휴식시간을 고려하면 얼추 들어맞는다) 원래부터 칼라칩 72개를 만들 계획이었으므로, 노동량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플라스틱 칼날은 절반만 칠했다.
이대로 만족하고 끝낼 수도 있었지만…
… 61개를 더 만들었다.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하자’ 싶어, 집에 있는 GSI래커 중 색감이 비슷한 것들이나, 기존에 리뷰했던 색들을 모조리 칼라칩으로 만들자는 생각을 했다. 1차 칼라칩 작업이 끝난 후 추가로 칼라칩화(化)할 페인트를 선별하는 작업에 돌입하여 61개를 더 골라냈다. 그리고 2019년 11월 30일 토요일 하루를 또다시 투자하여 61개의 칼라칩 작업을 모두 끝냈다.
- ‘19.11.24(일) 1차 칼라칩 72개 완성
- ‘19.11.30(토) 2차 칼라칩 61개 완성
- 칼라칩 총 133개 (보유 래커수 170개 대비 78%)
만들어진 칼라칩은 1차, 2차 합쳐 총 133개다. 이것들을 다음과 같이 8개로 그루핑(grouping)해보았다. 녹색, 갈색, 회색은 각각 진한색과 연한색으로 구분해주고, 파란색과 기타색(금속색, 원색)을 별도로 묶어주었다.
짙은 녹색 계열 (총 18개)
연한 녹색 계열 (총 29개)
진한 갈색 계열 (총 10개)
연한 갈색(황토색) 계열 (총 19개)
진한 회색 계열 (총 19개)
연한 회색 계열 (총 13개)
파란색 계열 (총 15개)
기타 (금속색, 원색 계열) (총 10개)
한창 칼라칩 작업 중인 베란다 작업대의 사진.
똑같은 작업을 133번이나 반복해야 해서 참 힘들었는데, 이렇게 만들어놓고나니 GSI래커에 대해 자신감이 붙는 느낌이다. GSI래커를 주력으로 쓰고 있으면서도 개별 색들의 색감이 어떤지, 다른 유사색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등을 공부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이 칼라칩들을 이용해서 정규품번과 특색들의 차이, 유사색 그루핑(grouping), 대체색 연구 등을 진행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