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용 핸드피스를 이용한 리베팅

MiG-23MLD 조립이 거의 끝났지만, 이대로 색칠을 시작하기에는 어딘가 아쉽다. R. V. Aircraft 키트의 특징 중 하나인 리베팅을, (철필로) 대충 해서 그런가보다. 쉬운 말로 “직성이 안 풀려” 그런 것 같은데… 결국, 머리 속에서 구상한 방식대로 리베팅을 재작업하기로 결정.

기계화 리베팅(?)을 위해 필요한 공구들. 중간의 검은색 공구부터 소개하자면…

  • 치과용 핸드피스 (이 작업의 핵심공구)
  • 막붓 (키트 표면에 쌓인 먼지 또는 찌꺼기(?) 제거)
  • 핀셋 (구멍에 박힌 찌꺼기 제거)
  • 철필 (구멍 정형(整形))
  • 스크라이버 (패널라인에 끼인 먼지 또는 찌꺼기 제거)
  • 막칫솔 (구멍 또는 패널라인에 끼인 먼지 또는 찌꺼기 제거)
  • 1500~2000번 사포 (표면정리)

키트 표면에 빽빽히 박힌 리벳 자리들을 하나하나 (다시) 핀바이스로 뚫어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비효율적일뿐만 아니라 힘들어 못한다. 나도 이젠 늙었다…) 자동화, 기계화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 ‘연장의 중요성’에 대해 인터넷에서 본 글들 몇 가지.

“목수양반이 하신 말씀 듣고 저도 생각을 바꿨습죠. 이거 연장이 다 하는 거야. 사람이 잘하는 거 아냐”

“전동드라이버 써보면 느낌 팍! 옵니다. 그동안 병신짓 했구나”

“한국인이 일은 많이 하는데 대신 생산성이 꽝입니다. 그런 사람은 미국에서는 잘리죠”

“극우세력 중에 ‘생산성=의지력’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죠”

“배움 역시 힘들고 어렵게 배워야 가치 있다고 생각하죠. 즐겁게 배우면 놀고 있다거나 군기 빠졌다고 학교, 학원에서 혼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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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업을 위해 이제까지 아쉬운대로 써오던 싸구려 전동조각기(루터; Router)를 버리고 큰 마음 먹고 치과용 핸드피스를 새로 들였다. (2020년 2월 구입) 자랑스러운 국산제품 (주)세신정밀의 Strong 90(컨트롤러)과 102L(핸드피스)다. 축의 흔들림이 없어 정밀한 작업을 하기에 좋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취미모형을 즐기는 모델러들은 핸드피스로 102 모델을 주로 택하는 것 같은데, 내 경우에는 콜렛척(Collet Chuck) 교환이 자유로운 102L 모델로 택했다. 기본적으로 3파이(지름 3mm) 콜렛척을 달아 쓰고 있지만, 별매품인 2.3파이와 3.175파이 콜렛척도 갖춰두고 있다.

  • 2.3파이 : 치과용 또는 세공용 버(Burr)에서 많이 쓰는 샹크(Shank) (지름 2.3mm)
  • 3.0파이 : 목공용 또는 일반작업용 버(Burr)에서 많이 쓰는 샹크(Shank) (지름 3.0mm)
  • 3.175파이 : Inch법을 쓰는 미국제 버(Burr)에서 쓰는 샹크(Shank) (지름 3.175mm, 1/8인치)

On, Off를 임의로 제어할 수 있도록 풋 컨트롤러(Foot Controller)를 연결.

핸드피스는 기본적으로 3.0파이 콜렛척을 단 상태지만, 마이크로 드릴을 물리려면 콜렛 슬리브(Collet Sleeve)가 필요하다. 내가 사용할 마이크로 드릴 비트의 샹크 지름(Shank徑)이 1mm이므로, 3.0파이 → 1.0파이 변환 슬리브가 필요하다. 내가 가진 핸드피스 제조사 (주)세신정밀에서는 이러한 슬리브가 나오지 않지만, 다행히 다른 핸드피스 제조사 (주)세양에서 이 슬리브를 별매로 판다.

(치과용 핸드피스는 국산이 최고라고 한다. 세신 스트롱, 세양 마라톤 등의 브랜드가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아, 중국산 짝퉁이 기승을 부릴 정도란다)

안타깝지만, 마이크로 드릴 비트는 타미야제를 사용한다. 축(샹크) 지름이 1mm인 이중드릴(?)을 사용하면, 핸드피스의 진동에도 드릴날이 쉬 부러지지 않아 좋다. 내 경우, 핀바이스로 리베팅을 할 때부터 이 드릴 비트를 사용해왔고, 주력인 0.2mm 비트는 6-7개 정도를 구비해두고 있다.

가격이 높은 것이 단점이다. 1개당 5~7천원 정도라서, 많이 구입하려면 부담스럽다. 가격이 훨씬 저렴한 (중국제) PCB 마이크로 드릴 비트(3.175파이 샹크)도 사봤는데, 영 못쓸 물건이어서 죄다 버렸다. 정밀공구 분야에서도 중국산이 많지만, 품질은 여전히 일본산을 이기기 어렵다.

이러한 종류의 드릴 비트는 아마도 일본 Union Tool이나 SEIKO 등의 제품을 OEM한 것 같은데, 원본을 알아내는 데는 실패했다. 원본을 알 수 있다면 좀더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수를 갖춰둘 수 있지 않을까.

본격적으로 리베팅(드릴링)을 해보자. 처음 해보는 것이라 삽질을 몇 번 하기도 했는데, 몇 번 하다보니 요령이 생기더라. 다음의 몇 가지를 주의하면 좋겠다.

  1. 메인 컨트롤러에서 회전속도를 미리 맞춰둔다. 드릴 비트와 모형 표면에 마찰(저항)이 있으므로, 너무 저속으로 맞춰두면 나중에 드릴 비트가 돌지 않는다.
  2. 키트 표면에 이미 난 리벳자리에 드릴 비트 끝단을 댄다. 이때, 드릴 비트(핸드피스)와 모형표면은 수직이 되어야 한다.
  3. 준비가 됐으면 풋 컨트롤러를 밟아 드릴비트를 돌린다. (손과 발을 모두 쓰게 된다!! 거의 곡예사 수준…)
  4. 일부러 핸드피스에 힘을 주어 구멍을 뚫으려 할 필요가 없다. 핸드피스 자체의 무게 때문에, 전원이 들어와 드릴 비트가 회전하는 순간, 드릴 비트가 아래로 내려가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원이 들어오자마자 핸드피스를 위로 들어올리는 것이 낫다.
  5. 리베팅(드릴링)이 잘 되었는지 확인한 뒤, 풋 컨트롤러에서 발을 떼서 전원을 off 한다.

위의 4번과 관계된 이야기인데… 드릴링이 시작되면 핸드피스가 자연스레 밑으로 내려가게 된다. 그러므로, 전원이 들어가자마자 잽싸게(…) 핸드피스를 위로 들어올리는, 즉 리벳자리에서 드릴 비트를 빼주는 것이 중요한데… 이걸 제때 빼지 않으면 드릴 비트가 빠졌다 하더라도, 리벳 구멍에 이처럼 2가닥의 찌꺼기(*)가 남아있게 된다. (“들어올림”이 거의 불가능한 핀바이스 리베팅 시에도 자주 발생하는 현상이다)

* 버(bur)라고 한다. 드릴 팁을 뜻하는 버(Burr)와는 한 글자 차이…

말씀 드린 것처럼, 전원이 들어와 드릴링이 시작되자마자 핸드피스를 위로 들어올리게 되면 이런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찌꺼기가 생기더라도, 위로 빠져나가는 드릴 비트가 리벳 구멍에서 이 찌꺼기까지 같이 빼내가기(?) 때문이다.

또 하나 주의할 점. 바로 “각도를 수직으로 유지”해야 한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작업시에 “각도를 변경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드릴 비트가 들어가는 처음부터 수직을 유지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드릴 비트가 구멍에 들어간 뒤에 각도를 틀었다가는…

…이렇게 비싼 마이크로 드릴 비트를 하나 날려먹게 된다. (ㅠㅠ) 드릴링 전(全) 과정에서 드릴 비트 작업각도를 유지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드릴링을 제대로 마친다면, 위와 같이 찌꺼기(bur)들이 나오게 된다. 미리 준비한 막붓이나 막칫솔 등으로 떨어내주면 끝이다.

이 찌꺼기는 드릴링할 때 꽤 성가신 존재다. 드릴링 표면을 확인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찌꺼기 발생 방향과 리베팅 흐름을 반대로 하면 이러한 일을 줄일 수 있다. 즉, 찌꺼기가 주로 리벳의 오른쪽에 쌓인다면, 리베팅 흐름을 오른쪽 리벳 → 왼쪽 리벳으로 진행하면 된다. 찌꺼기가 주로 리벳의 아랫쪽에 쌓인다면, 리베팅은 아래에서 윗쪽 방향으로 진행해나가면 될 것이다.

왼쪽은 철필로만 작업한 표면이고, 오른쪽은 철필 후 핸드피스 리베팅을 완료한 표면이다. 표면 사포질, 프라이밍, 색칠 등 후속작업을 하더라도 리벳이 메워질 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자동화, 기계화한 덕분에 이만큼 작업하는 데 생각만큼 시간이 많이 걸리지도 않았다. 이 기세를 몰아 R. V. Aircraft 키트의 특징인 무수한 리벳을 최대한 부각시켜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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