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워져 그랬는지, 새해 들어 어쩐지 모형작업에 슬럼프(이른바 ‘모럼프’)가 오더라. 근 한달간 모형을 잡지 않고 쉬었다. 모럼프가 올 때는 아무 생각 없이 푹- 쉬는 게 좋다는 게 내 생각이다. 푹 쉬고 나면 다시 손이 근질거려 작업대 앞으로 돌아오게 돼있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모럼프 탈출에 즈음하여 조금씩 작업했던 것들을 모아 정리용 포스팅을 올려본다.
1. 수직미익
Fujimi 키트는 하세가와 키트와 막상막하(莫上莫下)지만, 몇 가지 부족한 점도 있다. 그 중 하나는 시기별/블록별 차이점이 완벽히 커버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수직미익 역시 그러하다. F-14 톰캣의 수직미익에는 보강판이 달려있는데, 일반적으로는 ㄱ자지만, 극초기형은 육각형 모양으로 2장이 붙는다. 이미 새겨진 몰드를 가공하는 것보다는, 하세가와 톰캣에 든 극초기형 수직미익을 활용해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다행스럽게도 Fujimi 키트나 하세가와 키트 모두 모양이 비슷하다. 러더(rudder)의 면적이 조금 다른 점은 있지만, 전체적인 모양이나 동체와의 결합방식에서 별 차이가 없다.
다만, 하세가와의 수직미익은 동체쪽으로 박히는 핀이 하나 더 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핀을 잘라내버리는 게 편하지만, 이번에는 이 핀을 살려 수직미익의 접착강도를 확보해주고 싶었다. 즉, 동체쪽 페어링에 핀이 들어갈 길쭉한 구멍을 내주기로 했다. 드릴로 시작점과 끝점을 파내고, 그 가운데를 스크라이버로 벅벅 긁어내는 무식한 방식이다.
구멍이 뚫린 뒤에도 수직미익의 핀이 잘 들어가는지 계속 점검해야 한다. 이런 좁은 곳을 갈아낼 때는 전동공구를 쓰는 것도 방법이다.
완성이다. 작업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막상 끼워보면 두 수직미익이 적당히 벌어지지 않고 경직되게 수직으로 서버리게 되어 좀 아쉽다. 수직미익과 그 기부(基部)의 페어링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 점도 그렇고. 그래도 ‘고증에 맞춰 만들어달라’는 의뢰인(친동생)의 요구를 우선하여 만들었다는 데 의의를 두자.
2. AIM-54 피닉스 미사일 팔레트
이건 전혀 예상 못했던 작업이었다. Fujimi 톰캣 키트가 하세가와제보다 우수한 점 중 하나는 AIM-54 피닉스를 비롯한 공대공 무장이 완벽하게 들어있다는 점인데, 이게 의외로 허술할 줄이야.
피닉스 미사일과 팔레트(Pallet)를 맞춰보았다. 팔레트 페어링부터 미사일 레이돔까지 매끄럽게 이어져야 하는데 이게 웬 일인지… 여기서부터 기분이 팍 상했다.
내친김에 하세가와 키트의 피닉스 팔레트와 비교. 위가 Fujimi, 아래가 하세가와다. 길이에 문제가 있다. 후방 팔레트는 앞단의 둥그스름한 페어링도 없어서 모양이 전혀 다르다. Daco사 자료집의 도면에 따르면, 하세가와 부품의 길이와 모양이 더 정확하다.
다만, 전방 팔레트의 삼각형 페어링의 모양과 크기는 Fujimi 키트의 것이 더 정확하다. 하세가와제는 볼륨이 부족하다.
후방 팔레트 끝단은 동체 후방의 양각 몰드와 간섭도 발생한다. 이거, 은근히 손댈 곳이 많다…?
Fujimi와 하세가와, 각각 일장일단이 있기 때문에 무엇을 기본으로 해야하나 고민을 좀 했는데… Fujimi제를 기본으로 가공하는 것이 좀더 작업량이 적겠다 싶었다. 전방 팔레트는 3mm 정사각형 플라스틱 각재를 붙여 길이를 연장해주고, 후방 팔레트는 하세가와 부품을 잘라 붙여주었다.
후방 팔레트 페어링의 경우, 단면이 사다리꼴인데 두 키트 부품의 모양이 좀 차이가 난다. 다행히 하세가와 부품이 살짝 크기 때문에, 스틱사포로 각(角)을 잘 맞추어 갈아내주면 큰 무리 없이 서로 모양이 맞게 된다.
팔레트 끝단은 양각 몰드에 닿는 부분만큼만 얕게 갈아내어 하판에 밀착되게 만든다.
퍼티 작업까지 마치면 한 부품처럼 보인다.
피닉스 미사일은 원래 뚫려있던 구멍을 메우고 그보다 조금 앞에 구멍을 뚫어줬다. 이제야 팔레트 페어링과 피닉스 레이돔이 매끄럽게 이어지는구만…
완성된 모습. 생각지도 않던 데서 힘이 들어가긴 했지만, 이런 소소하고 소박한 작업은 은근히 재미가 있다. (꼼지락 대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지는 아는 사람만 안다) 노즈기어/랜딩기어 도어, 어레스팅 후크 등 자잘한 디테일들을 마무리 하면 조립도 끝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