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연휴가 끝났다. 가족모임은 없었지만, 아이들과 남산에도 가고 밀린 집안일도 하고 나름 알차게 보냈다. 작업대에 앉아 깨작거릴 짬까지 나기에, 벼르고 벼르던 작업을 시작했다. 바로 사출좌석과 파일럿 칠하기.
둘 다 그 크기에 비해 작업량도 상당하고 집중력도 꽤 많이 요구한다. 모두가 다 내 붓칠이 서툴러 그런 것일텐데, 웬만해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손을 대는 일이 잘 없다. 퇴근 후 틈틈이 칠한다는 것은 사실 어렵고, 이렇게 연휴나 돼서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나 마지못해 붓을 들게 되는 편이다.
1. 사출좌석
1/72 스케일에서 사출좌석이나 파일럿은 음영을 강하게 주는 것이 좋은 것 같다. 크기는 작지만 시각적으로 돋보여야 하기 때문에, 무광검정 래커를 밑색으로 올리고 밝은 부분만을 (밝은색) 에나멜로 살짝살짝 강조해주는 식으로 칠하고 있다.
사출좌석은 실물사진을 참조하여 타미야 에나멜 4가지 색을 써서 칠했는데, 파일럿을 앉힐 것이므로 평상시보다 70% 정도로만 공을 들였다. 이젝션 핸들은 KA Models의 칼라에치를 사용할 예정인데, 파일럿을 앉힌 뒤에 접착할 예정이다.
2. 파일럿 목 결합 교정(?)
파일럿은 색칠/조립의 편의를 위해 머리(헬멧)과 몸을 아직 붙이지 않았고 각각 흰색과 검정색을 밑색으로 올렸다. 머리쪽에 곤충핀을 박아두었는데, 이번에 보니 목이 몸에 딱 들러붙지 않아 결합상태가 조금 어색해보인다.
몸쪽 부품의 접착부위를 조금 둥그스름하게 파내야겠다. 전동공구에 팁을 물려 오목하게 파냈다.
머리쪽 목 부위가 훨씬 자연스럽게 붙게 되었다.
3. 헬멧 칠하기
하이비지 시대의 VF-84 파일럿 사진을 찾아보니, 모두 노란색 헬멧을 쓰고 있더라. 거기에 검은색 문양(文樣)도 그려져있어, 지금 상태대로 ‘흰색 헬멧’으로 놔뒀다가는 ‘엉터리’ 소리 듣기 딱 좋을 것 같았다.
잠깐 고민했다. 미세먼지 많은 연휴 마지막 날, 베란다 작업실에 나가 에어브러시와 콤프레서를 돌려가며 (이미 흰색으로 칠해진 헬멧 부품에) 노란색을 한번 더 올려야 하나? 뿐만 아니라, 둔한 붓칠 실력을 갖고 헬멧에 깨알처럼 작은 문양들을 그려야 하나? 아니, 그릴 수는 있나?
…결론은 “해보자”였다. 키트 본체 조립을 조금 평이하게 넘어간 데 대한 반성(?)이라고 해야할까, 의뢰인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해야할까. 뭐가 됐건 좀 특별하게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노란색 래커 몇 가지를 들고 베란다로 나가 칼라칩을 만들며 VF-84 헬멧색으로 적당한 색을 찾아봤다. GSI래커 C113(2차대전 독일공군의 RLM04)이 적당해보였다. 색을 올리고 다시 거실 작업실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문양 그리기에 돌입했다.
VF-84 파일럿들의 헬멧에 그려진 대표적인 문양은 V자의 쐐기(wedge) 모양이다. 뾰족한 각(角)을 살리기 위해 고심했는데, 몇 번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쉽게 그리는 법을 터득했다.
우선, 쐐기의 양 테두리를 그린다. 이렇게 가는 선을 그릴 때는 붓과 페인트의 컨디션도 중요한데, 나름 터득한 바로는,
- 붓은 타미야 면상필(面相筆)을 사용하여,
- 붓 몸통(?)에는 시너를 흠뻑 먹이고,
- 묽거나 중간 정도의 점도(粘度)를 띤 페인트를,
- 붓 끝에만 살짝 묻혀,
- 부품 표면에 붓을 올린 뒤 살짝 힘을 줘 페인트가 묻으면,
- 그 힘을 그대로 유지하며 붓을 쭈욱- 밀고 나가면 된다.
양 테두리의 끝에서 X자 형태로 2개의 교차선을 그려준다. 이것으로 테두리는 완성된다.
테두리가 잡혔으므로, 안쪽을 채우는 것은 수월하다.
VF-84 파일럿 헬멧은 쐐기문양이 바이저 하우징 등 최대 4개까지 있는 경우도 있어 모델러의 뒷목을 잡게 하는데, 위의 방식대로 그린다면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사실, 뺨(?)쪽의 쐐기문양 안쪽에는 VF-84 Jolly Rogers의 심볼인 Skull & Crossbones가 그려져있는데, 이것만큼은 실력부족으로 생략했다)
헬멧 뒤에는 가늘고 굵은 선 3개가 있는 경우도 있다. 위에서 소개한 ‘가는 선 그리는 법’을 참고해서 집중력을 발휘해 그리는 수밖에는 없다.
톰캣의 파일럿은 2명이므로 이 작업을 2번 해야 하지만(…) 쐐기문양을 8번 그리기는 너무 힘들어서, 6번만 그리는 것으로 요령을 피워봤다. 파일럿 1명의 바이저 하우징에는 쐐기문양 대신 VF-111 Sundowners 스타일의 패턴을 그려봤다.
헬멧 뒷면의 3개의 선(線)도 생략. 왼쪽처럼 쐐기 4개, 3선(線) 1조(組)인 헬멧이 제일 흔하지만, 오른쪽처럼 문양이 적절히 가감된 헬멧도 꽤 많기 때문에, ‘엉터리’는 아니다. 오히려 파일럿 각자에게 개성을 부여할 수 있어서 더 좋아보…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