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west Miniature Museum 구경

2024. 5. 29(수)부터 5. 31(금)까지, 미시간 서쪽, 밀워키(위스콘신), 시카고(일리노이) 여행을 다녀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5대호 중 하나인 미시간호(湖)를 오가는 페리(ferry)를 타기 위해 급조(…)한 여행이었다. 바다나 다름 없이 넓은 미시간호를, 미국생활에서 내 발이 되어주고 있는 차와 함께 건너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페리를 타려면 미시간주 서부로 가야 한다. 미시간쪽 부두는 머스키건(Muskegon)이라는 곳에 있는데, 가는 길에 그 아래에 있는 그랜드 헤이븐(Grand Haven)이라는 도시도 가보기로 했다. 작지만 예쁜 마을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미니어처 박물관이 있다는 정보를 우연히 알게 됐기 때문이다.

듣던대로, 조용하지만 아름다운 주변구경을 마치고 다운타운 안쪽에 있는 미드웨스트 미니어처 박물관(Midwest Miniature Museum)을 찾았다. 화요일부터 토요일은 10:00-17:00, 일요일은 12:00-16:00, 월요일은 휴관이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8달러. 박물관 뒷편으로 무료주차공간이 있어 편리하다. (미국이 자동차 천국이라고는 해도 주차가 유료인 곳이 굉장히 많다. 여행갈 때는 주차정보를 꼭 확인해야 한다)

원래 이 박물관은 더 남쪽에 있는 길모어 자동차 박물관(Gilmore Car Museum)의 일부였다고 하는데, 2021년에 그랜드 헤이븐의 이 고택(古宅)으로 옮겨 새로 개관하였다고 한다. ‘Robbins House‘로 알려진 이 고택은, 미국 연방정부 사적지로 등재된 유서 깊은 건물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소박하지만 아름답고 관리도 잘 되어있다.

건물 자체는 3개 층이지만, 현재는 지상 1개층만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운영법인에 따르면, 몇 년 내로 건물 전층 활용, 엘리베이터 설치 등이 천천히 이루어질 거라고.

박물관에 들어오면 정면에 입장권 구매 및 안내석이 있고, 그 양쪽으로 홀(hall)이 1개씩 있는데 그 홀들이 주(主)전시장 역할을 한다. 사진은 왼쪽 홀에서 중앙과 오른쪽 홀을 찍은 것이다.

먼저 왼쪽 홀. 가장 왼쪽 벽에 박스형 디오라마 몇 점을 심어두었고, 그밖에는 작은 미니어처 소품들을 전시해놓았다.

벽에 심어둔 박스형 디오라마란 이런 것이다. 정확한 용어로는 ‘미니어처 룸'(Miniature Room) 또는 ‘미니어처 룸 박스'(Miniature Room Box)라고 한단다. 내가 즐기는 밀리터리 플라스틱 취미모형과는 다른 영역이지만, 실제로 보면 감탄을 금할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시카고 미술관(Art Institute of Chicago)이 작품을 소장할 정도로 예술성을 인정 받은 장르라고 한다.

사진은 시카고 출신의 미니어처 아티스트 유진 쿱잭(Eugene Kupjack)의 ‘Silver Shop’이라는 작품. 스케일은 1/12.

역시 유진 쿱잭의 1976년작 ‘Napoleonic Study'(나폴레옹풍(風)의 방).

장식장에는 미니어처 단품들이 전시돼있다. 모두 1/144 스케일.

이건 또 입이 떡 벌어진다. 회화, 조각 등 예술작품들을 미니어처로 재현(!!!!)한 것이다. 조각품들의 미니어처는 그렇다 치더라도, 회화를 원작보다 축소하여 그려낸 솜씨에는 경악할 수밖에 없다. 크기는 손톱, 또는 손가락 한두마디 정도에 불과하다. 실제와 똑같이 유화물감 등을 써서 그려낸 것이라고 한다.

돌하우스(Doll House) 작가이자 돌하우스 소품 제조사 Farrow Industries의 바바라 패로와 진 패로(Barbara and Gene Farrow)가 만든 1/12 스케일 ‘Grocery Store'(식품가게). 물건에 붙은 상표나 포장지들이 모두 인쇄된 것이라 이건 좀 인간적(?)으로 느껴지기는 하는데…

사실, 이 작가/작품의 의의는 다른 데 있단다. 돌하우스 소품으로 판매하기 위해 돌(Dole) 등 식품브랜드의 상표 사용권을 처음으로 획득한 사람들이기 때문. 이것 역시 그녀들의 회사 Farrow Industries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Showcase격의 작품이고.

왼쪽 홀 뒷편, 2층 계단으로 이어지는 작은 공간에는 색칠을 하지 않은 거리/건물 미니어처가 진열돼있다. 이렇게 제작 중간단계를 보여주는 작품은, 완성작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가 있다.

오른쪽 홀에는 규모가 큰 작품들이 전시돼있다. 역시 유진 쿱잭의 1975년작, ‘Residential Barrister’s Office'(변호사 사무실). 1/12 스케일.

Bluette Meloney(건물), Peter Acquisto(은제류(銀製類)), Jason Getzan(금속류와 조명), Jim Irish(크리스탈 소품)의 협동작품, ‘Girault Gallery'(1/12 스케일). 안내문에 따르면 이 작품의 백미(白眉)는 크리스탈 소품들이라고 한다. 실제 크리스탈 제품들과 유사하게 손으로 깎아낸 것들이라고.

건물 내외부를 모두 재현한 작품들이 많았지만 가장 눈에 들었던 것은 이 ‘고흐의 노란 집'(Van Gogh’s Yellow House by Ron and April Gill). 오른쪽 홀 한쪽 벽에 고흐의 노란집 그림을 배경으로, 이 미니어처를 전시해놓았는데…

건물 내외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관람자 역시 고흐가 살던 그 시대, 그 장소에 가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건 단지 고흐 인형, 노란집 그림 미니어처 때문만은 아니다.

고흐의 작업실과 침실은 물론, 고흐의 유명한 작품들이 모두 미니어처로 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흐가 살던 그곳, 그리고 그때의 기분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양쪽 홀을 지나 가장 안쪽의 방으로 들어가면 이 집을 박물관으로 개조할 때 발견한 옛 집주인들의 사진들이 걸려있다. 미니어처 박물관이라는 정체성과는 다소 이질적인 공간이긴 하지만, 국가유적지이기도 한 이 집 자체를 위한 공간을 설치하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다. 옛 집주인들의 사진과 설명을 찬찬히 보고 있으면, 130년에 이르는 이 집과 미시간, 미국 역사의 또다른 장면들이 펼쳐지기도 한다.

이 박물관이나 그랜드 헤이븐 모두 작지만 아름다운 곳이다. 한국인들은 잘 가지 않는 지역이지만 근처에 가게 된다면 꼭 한번 들러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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