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색창연한 클래식 키트를 하나 구했다. 아카데미에서 1998년도에 발매한 1/24 스케일 대우 르망. 그간 큰 관심이 없었는데, 개인적인 사연 때문에 몇 달 전부터 구하려고 노력하던 키트다. 중고나라에 매물이 올라오자마자 바로 구입했다. 그간 인터넷에서 본 시세보다 다소 높은 가격이었지만 꼭 필요했기에 눈을 딱 감고 구했다.

개인적인 사연이라는 것은 바로 이것. 아버지와 우리 가족의 첫 차였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이 은색 르망을 얼마나 아끼셨는지, 귀가하신 뒤에는 매일 밤 (요즘은 잘 쓰이지도 않는) 자동차 커버를 씌워 두셨다가, 다음날 아침이면 그걸 걷고 출근하는 번거로운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더 늦기 전에 꼭 그 첫 차의 모형을 만들어 선물해드리고 싶었다.

키트 금형에 새겨진 생산연도를 보면, 이 키트는 1988년에 나온 것으로 돼있다. (Scalemates에는 1990년으로 돼있지만, 잘못된 정보 같다) 대우 르망은 독일 Opel의 Kadett E를 기본으로 하여, 미국 Pontiac에서도 LeMans(6세대)로 팔렸던 차였기 때문에, 아카데미 키트는 미국과 유럽에서도 Minicraft 브랜드로 풀렸던 것 같다. 인터넷에도 이 버전의 키트에 대한 리뷰가 많다.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일본의 경매사이트인 듯 하다. 일본 Yahoo! 옥션이나 메루카리에 아카데미제 키트가 가끔 올라온다. 상자 겉면에 (80년대 한국 모형계와 뗄래야 뗄 수 없는 모형제조사 겸) 수입상 Sunny(サニー)의 스티커가 붙어있다.

내가 이번에 중고나라에서 구한 키트도, 사실 이 일본 수출품(?)을 역수입한 뒤 마진을 붙여 다시 내놓은 제품이 아닐까 싶다. 판매자분이 몇 달 전에 같은 물건을 파신 기록이 있는데, 이러한 희귀아이템을 몇 개씩 소장하고 계신 것도 아닐텐데… 무엇보다도 겉면의 스티커 뗀 자국을 보면, 일본 수출품을 구입 후 재매도 하시는 것으로 추측된다. (딴지는 아니고, 이러한 희귀아이템을 어떻게 조달(?)하시는지 그 루트가 궁금하여…^^)

아무튼 내용물은 이렇다. (원래 이 안에 가득했던 세절(細切)된 종이충전재가, 일본에서 많이 쓰이는 바로 그것이라는 점도 내 추측을 강화시켜주었다) 모터구동식의 설계, 색 짙은 투명부품 등의 특징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다.

부품들은 큼직큼직하여 개수가 많지 않다.

자동차 키트의 관건은 차체부품일 것이다. 80년대 키트의 미감(美感)이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과연 잘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모형 제작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지만, 이 키트만큼은 늦어지기 전에 완성을 시켜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