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MS/USA National Convention – 약칭 Nats라고 불리는 IPMS/USA 전국대회는 아마도 북미대륙에서 가장 큰 모형쇼일 것이다. 매년 여름시즌에 열리는 이 쇼는 IPMS 회원들의 출품작 콘테스트를 기본으로, 메이커(Vendor) 시장, 행운권 추첨(Raffle), 동호회 전시, 강연, 환영 연회(Banquet), 근교 단체투어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미국 뿐만 아니라, 캐나다, 멕시코, 남미 등 미주대륙은 물론, 유럽에서도 참여하는 큰 규모의 행사다.
20년전 시즈오카 하비쇼에 다녀온 이후, 나의 그 다음 버킷 리스트는 언제나 IPMS/USA 전국대회였다. IPMS 주최 쇼들이 생각만큼 수준이 높지 않다거나, 말레이시아, 상하이 등 아시아권의 쇼들이 더 볼거리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래도 나는 미국 본토에서 열리는 IPMS/USA 전국대회를 꼭 가보고 싶었다. 2023년 12월 중순, 1년 일정으로 미국 미시간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Nats 2024 일정을 알아본 것도 그 때문이었다.
2024년도 전국대회는 미시간 바로 옆인 위스콘신의 주도(州都) 매디슨(Madison)에서 열리기로 돼있었다. (7.17(수)-7.20(토)) 이게 웬 행운이냐 하면서 행사시작 6개월 전인 1월말에 항공편, 호텔, 렌터카 등 모든 예약을 완료했는데… 나중에 미국생활에 익숙해진 뒤 살펴보니 내가 참 비싸게 여행계획을 잡았더라. 미국사람들은 미시간(랜싱)-위스콘신(매디슨) 정도 거리는 차로 운전해 다니지, 나처럼 비행기 타고 렌터카 잡고 그러지 않기 때문이다. 최저가로 예약한다고 모든 경비를 non-refundable 조건으로 구입하는 바람에 취소할 수도 없고…
어쨌거나, 시간은 흘러 7.18(목)이 됐다. 새벽부터 일어나 대충 아침을 먹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들고 이스트랜싱 다운타운에서 출발하는 리무진 버스 Michigan Flyer를 탔다. 2시간 정도 걸려 디트로이트 공항에 도착.




지역대회에서 수상했던 1/72 스케일 F-4E와 MiG-27MLD를 들고 갔다. IPMS 지역 지부들이 주최하는 지역 모형쇼들과는 달리, IPMS/USA 전국대회 콘테스트에는 IPMS 회원들만 참여할 수 있어 나는 자격이 안 된다. 다만, 내가 소속된 C.A.M.S 지부가 동호회 전시를 하기 때문에 거기 찬조출품을 하러…

탑승 후, 70분 정도의 짧은 비행을 거쳐…


위스콘신주 매디슨에 위치한 Dane County Regional Airport에 착륙. Welcome to Madison!
바로 Budget 렌터카로 가서 예약한 차량을 인도 받았다. 가장 저렴한 기아 Forte(한국 모델명 K3)급으로 신청했는데, 웬일인지 SUV인 소렌토를 주더라. 땡 잡았다.

벌써 오후 2시가 다 됐다. 쇼는 밤까지 하지만, 메이커 시장(Vendor Hall)이 17시에 닫히므로 우선 행사장으로 바로 가기로 했다. 저 멀리 위스콘신 주정부청사가 보인다.


주정부청사 앞에서 길을 잘못 들어서 한 바퀴 돌았다. 사진 오른쪽으로 행사장인 모노나 테라스(Monona Terrace Community and Convention Center)가 보인다. 모노나 호수(Lake Monona)에 연(沿)해있다.

행사장에 도착.

드디어 2024년도 IPMS/USA 전국대회에 들어왔다. 이곳이 바로 메인행사인 콘테스트가 열리는 4층의 볼룸(Madison Ballroom)이다. 오른쪽의 부속 홀(Hall of Ideas)까지 콘테스트 행사장으로 쓰인다. 행사 안내문에 따르면, 볼룸 13,524 sq. ft. (1,256 제곱미터), 부속 홀 6,840 sq. ft. (635 제곱미터)이므로, 약 570평 정도의 공간이 콘테스트 행사에 쓰이는 셈이다.

본격적인 입장은 1일 입장권을 구입해야 가능하다. 가격은 20달러.
오늘(행사 둘째날)의 일정은 다음과 같다.
- 09:00 : 행사 및 출품작 등록 개시
- 10:00 : 각종 세미나 시작
- 17:00 : 메이커 시장(Vendor Room) 폐장 + 출품작 등록 마감
- 19:00 : 루프탑에서 환영 콘서트
- 20:00 : 전시회장 폐쇄
- 21:00 : 시설 전체 폐쇄

무겁게 들고 다니던 F-4E와 MiG-27MLD를 빨리 내려놓고 싶어서 동호회 전시공간을 먼저 찾았다. 4층 콘테스트 행사장에서 한 층 내려오면 (1층으로 내려가기 전) 중간층(Mezzanine level)이 있는데, 동호회 전시공간은 여기에 있다.

동호회 전시공간은 Tiger Meet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내가 속한 C.A.M.S의 테이블. F-4E와 MiG-27MLD를, 수상메달과 함께 디스플레이 했다.


다시 4층으로 올라와 콘테스트 행사장 안내도를 다시 한번 살펴봤다. 역시 비행기와 AFV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비행기는 볼룸에, AFV는 부속 홀에 전시됐다.

메인 볼룸의 모습.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높은 테이블이 설치된 것이 눈에 띈다. 조명은 조금 아쉽다.
4일간의 행사기간 중 콘테스트 출품은 3일차 오전까지 가능하지만(출품작 심사는 3일차 오후부터 이뤄짐), 보통 1-2일차에 완료되는 것 같다. 내가 Nats 2024 둘째날부터 참관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가득 찬 테이블을 보니 출품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된 것 같았다.

오후 3시가 되자 마음이 급해져 1층에 있는 메이커 시장(Vendor Hall)으로 뛰어들어갔다. 메이커 시장은 5시에 닫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Sprue Brothers Models가 이 공간의 스폰서다.

3,500 sq. ft., 즉 약 100평에 이르는 넓은 공간에 90여개의 모형 관련 회사들이 부스를 차렸다.

일본 Zoukei Mura가 큰 부스를 냈다.

하지만 가장 큰 부스를 낸 것은 Squadron이다. 두 블록을 모두 차지했다. 텍사스 시절과 지금의(조지아 주에서 운영하는) Squadron은 사실 별개의 회사가 아닐까 싶긴 하지만… 이 브랜드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는 것은 모형쟁이들에게 여러가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시간이 되는 분들은 이 브랜드를 인수해 운영 중인 Brandon Lowe의 스토리를 읽어보시면 좋겠다. (Squadron이 1968년 미시간(디트로이트)에서 시작했다는 거 알고 계셨던 분 있으신지?)
체코 Eduard는 행사장 한 가운데, 가장 좋은 자리를 잡고 세일즈에 열을 올렸다. 요즘 사재기 욕구가 많이 줄어들었기에 망정이지, 가난한 유학생 주제에 지갑 털릴뻔 했다.

수많은 메이커 테이블, 산더미 같은 아이템들을 꼼꼼히 둘러보기엔 시간이 촉박하다. 오늘은 일단 주마간산(走馬看山)식으로 빨리 훑어보고 나온다.

미국 모형시장도 3D 프린팅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다. 다만 보수적인 미국 모형계의 특성상, 이러한 만화풍 제품의 시장성은 조금 의문스러운데, 미시간 소재 모형샵(Michigan Toy Soldier)이 용기 있게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어 반가웠다.


북미 모형시장에 다양한 동유럽 제품을 공급 중인 UMM-USA가 큰 부스를 냈다. 한국 모형인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동유럽 물건을 직접 구매하는 것이 여러모로 나은 선택이기 때문에 따로 구입할 유인(誘因)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항상 궁금했던 동유럽 또는 UMM-USA 오리지널 공구(tool)들을 직접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 UMM-USA는 Nats 2024 이후, 2024.11월에 일리노이주 Naperville에서 열린 IPMS/USA Region V Regional Show에서 다시 만났다. (UMM-USA의 주소지가 원래 일리노이주 시카고 인근이다) 대표인 John Vojtech와 길게 얘기 나눌 기회를 얻은 것도 그때였다. 은퇴 이후 UMM-USA 공구들을 수입해 팔아볼까 하는 귀여운(?) 생각도 해봤다.

다시 Tiger Meet (동호회 전시) 행사장으로 복귀. 동쪽의 모노나 호수에 면해 자연채광이 좋은 곳이었지만, 오후시간이 되니 그 잇점이 조금 약해졌다.

‘반지의 제왕’ 아이템을 다루는 Middle Earth SIG(Special Interest Group; 특정주제 동호회).

페인팅만으로 이러한 효과를 낼 수 있다니…

C.A.M.S 회원인 Chris L.이 참여하고 있는 Michigan Truck Modelers의 테이블. 미국적이면서도 굉장한 매력이 있는 그러한 장르다.

Michigan Truck Modelers 뒤에 전시된, Tomcat SIG 테이블. 출품작 수가 많다거나 완성도가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미해군 제트기 팬으로서 관심 있게 살펴봤다.



미해병대 항공단, 미해군 항공단, 에어포스원, 미육군 항공대 기종들을 만드는 그룹빌드 테이블. 미국 모형인 입장에서 이러한 테마는 자료접근성이 좋아서, 같은 주제를 좋아하는 외국 모형인들보다 훨씬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많은 기종들을 이렇게 하나하나 만들어냈다는 것은, 국적과는 상관 없는 ‘열정’의 문제라고 본다.


종이모형 테이블.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으니 테이블 당번(?)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다가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난 사실 플라스틱 모형 애호가인데…^^

꽤나 공들인 스타워즈 디오라마. 물론, 모두 종이로 만든 것이다.


오후 5시를 몇 분 앞두고, 오늘의 사실상 첫 끼니(아침을 먹고 출발하긴 했지만…)를 먹기로 했다. 멀리 나갈 힘도 없고… 4층 콘테스트장 앞에 설치된 매점(Concession)에서 해결하기로.

치즈버거와 샐러드 사이드, 마운틴듀… 이렇게 해서 17.82 달러. 적당한 가격에 맛나게 먹었다.

이젠 행사장으로 들어와 본격적인 콘테스트 출품작들을 구경하기로 했다. 출품작 등록 자체는 5시에 끝나지만, 8시까지 콘테스트 행사장은 열려있으니까. 오늘은 우선 비행기 중심의 메인 볼룸을 훑기로 한다.

미국 전역에서 오는 IPMS/USA 회원들이 비행기 모형을 어떻게 실어오나 궁금해서 한 컷 찍어봤다.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는 경우는 좀 다르겠지만, 이 회원의 스티로폼+산적꼬치 포장(?)은 한국 모형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비행기 장르의 출품 카테고리는 역시 복엽기부터 시작한다. 눈에 띄는 작품들을 모두 촬영하겠노라 의욕을 부렸는데, 몇 작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 되더라.






모형지 FineScale Modeler가 이 IPMS/USA 전국대회 취재를 허투루 할 수 없다. FSM는 자신들 눈에 든 작품 밑에 이 같은 종이를 끼워두어 촬영협조를 요청한다.

배기연(排氣煙) 효과가 멋졌던 P-38.

행사에 오다가 랜딩기어가 부러져서 급하게 날개 밑을 타올로 괴어둔 B-26B. 평가단(Judge)에게 읍소하는 메모가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깜짝 놀랄만큼 멋진 작품들도 자주 보인다.

A-1H 스카이레이더의 배기연(排氣煙) 효과를 재현한 작품 중 이것만큼 멋진 것은 본 적이 없다. 동체 골조를 따라 배기연을 다른 농도로 표현했다. Rescue 데칼 테두리도 이만큼 공들여 처리했으면 좋았을 것을.


광택코팅이 아름다웠던 F9F-2 팬서.

아카데미 1/72 Me 262.

패널라인은 마스킹졸로 처리한 것 같다.



IPMS/USA 출품작들을 보다 발견한 흥미로운 문화. 제작과정을 정리한 자료를 소책자로 만들어 출품작 옆에 놓아둔다. 이 소책자가 얼마나 예쁘게, 효과적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출품작들을 즐기는 재미. 관람객들은 물론, 판정단의 심사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F-35A는 WrightCon에서 본 것 같은데…? (실제로, IPMS/USA 대회들은 기존 발표된 작품들의 재출품을 크게 제한하지는 않는다)


거의 모든 인테리어를 자작한 하세가와 1/72 F-14D. 내 나름대로 뽑은 Best of Show. 스케일이 작고, 미국 모형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여서 혹시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날 시상식 때 알고 보니 세르비아 모델러의 작품이란다.








조금 과한 면은 있지만… 색칠로 골조와 패널을 일일히 강조한 열정이 느껴지는 작품.



모든 출품작은 출품자 정보가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누가 만든 작품인지 알 수 없지만… C.A.M.S 부회장인 Brad S.가 출품한 1/32 스케일 F-4C. 우리 회원들에게 제작과정을 공유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공을 많이 들였지만 Nats 2024에서는 안타깝게 수상에 실패했다. 다행히도 이 작품은 올해 2월 4M Mayhem(미시간 중부지역) 콘테스트에서 Best in Show를, SEMMEX(광역 디트로이트) 콘테스트에서 Best of Show 2등을 수상했다.


키트가 있는 건가? 대형 스케일의 LCM-8 상륙정. 디테일업을 위함인지, 자작을 위함인지 모르겠지만, 주요 몰드는 자작했다고…


내부 재현도 충실.

종이모형도 별도의 카테고리가 배정돼있다.


하세가와 1/48 Voyager 1호 키트를 디테일업한 작품. 투명한 고정베이스가 멋있다.

이번 전국대회 수상작들에게 수여될 상패(Plaque)들. 큰 상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세계에서 인터뷰가 쇄도하는 것도 아니지만, 저걸 받는 사람은 정말 행복할 것이다.

카테고리 번호 700번대는 통상의 장르구분이 어려운 ‘잡다’한 것들이 모여있다. 그 중, 카테고리 771번은 ‘트라이애슬론’이라 하여 기본 키트조립만으로 서로 다른 3개의 장르를 1개로 묶어 출품하는 카테고리다. 순전히 ‘재미’를 위한 것이지만, 이런 식으로 모형작업의 동기부여를 하는 방법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둘째날 저녁에 환영 연회가 열리기는 하지만, 혼자 구경 온 내가 미국 모형인들과 사교만찬(social dinner)을 갖기는 아무래도 좀 어려워서… 행사장을 나와 15분쯤 떨어진 숙소에 체크인. 점심을 늦게 먹었으므로 저녁식사는 생략했다. 아침부터 쉬지 않고 움직였기 때문에 피곤하기도 했다. 이렇게 IPMS/USA 전국대회 구경 첫날(행사 이틀째 날)의 하루가 간다.